지난 수년간 중남미 대륙을 지배했던 정치적 흐름은 온건 좌파 정부들이 연이어 집권하는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였습니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에 대중이 응답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남미 정치 지형은 고질적인 초인플레이션과 마약 카르텔, 조직폭력(갱단)으로 인한 극심한 치안 공백을 타파하기 위해 파격적인 우파 경제 긴축과 강력한 공권력 중심의 독자 노선을 택하며 거대한 지각변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의 파격적인 아나코-자본주의 실험, 하비에르 밀레이
이러한 정치적 우향우 바람의 최전선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인물은 단연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입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방만한 페론주의(퍼주기식 복지 포퓰리즘)의 결과로 세 자릿수가 넘는 가혹한 초인플레이션과 고질적인 국가 부도 위기에 신음하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자'라 부르는 전기톱을 든 정치 이단아를 선택했습니다.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입니다. 취임하자마자 정부 부처를 절반으로 통폐합하여 관료 조직의 군살을 도려냈고, 가치가 폭락한 자국 화폐 페소 대신 달러를 공식 통화로 도입하려는 달러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만한 국영기업들의 과감한 민영화, 서민 경제를 지탱하던 각종 보조금의 전격 삭감, 시장 규제의 전면 폐지 등 전례 없는 초긴축 재정 보수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득권 노조의 강력한 총파업과 사회적 반발, 당장 보조금이 끊겨 삶이 팍팍해진 서민층의 고통과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단 몇 달 만에 흑자로 돌아서게 만들고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등 가시적인 거시경제 지표를 뽑아내며, 중남미 정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경제적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와 사회적 양극화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 엘살바도르 부켈레 모델의 독주와 공권력 최우선주의
경제 영역에 밀레이가 있다면, 사회·치안 분야에서는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확립한 '치안 최우선 모델(Bukeleism)'이 중남미 전체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과거 인구 대비 살인율 세계 1위를 기록하며 마약 갱단들의 무법천지였던 엘살바도르에서, 부켈레 대통령은 영장 없는 체포가 가능한 헌법상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인구의 1%에 달하는 수만 명의 조직원들을 대규모 특수 교도소에 한 번에 가두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권 단체들과 국제사회는 적법 절차 무시와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야간 통행금지와 카르텔의 갈취에 시달리던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갱단이 사라진 거리에는 다시 상점들이 문을 열었고 어린이들이 공원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인율이 경이적인 수준으로 폭락하자 국민들은 열광했고, 부켈레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 '부켈레 모델'은 현재 치안 붕괴로 국가 마비 사태를 겪은 에콰도르, 온두라스, 페루 등 이웃 중남미 국가들에게 엄청난 유혹이자 롤모델로 급부상했습니다. 군대와 경찰을 거리에 배치하고 범죄자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공권력 중심의 정치가 중남미 전역에서 정국을 주도하는 치트키가 된 것입니다.
🤝 '이념'이 아닌 '생존'을 택한 중남미 대중의 실용주의
오늘날 중남미 정치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거창한 정치 이념이 아닙니다. 대중은 초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적 불안'과 언제 길거리에서 총을 맞을지 모른다는 '생존의 불안'에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과거의 부패한 기득권 좌우파 정당들이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못하자, 국민들은 당장 내 지갑의 가치를 지켜주고 내 아이가 안전하게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면 그것이 급진적인 긴축이든 강력한 권위주의적 공권력이든 기꺼이 표를 던지는 '철저한 실용주의적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좌파의 온건한 복지 실험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중남미는 생존과 안정을 향한 가장 거칠고 역동적인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 깊이 있는 한 줄 평
"이념의 아름다운 수사보다 당장 눈앞의 빵과 안전이 시급한 중남미 대중은, 국가 부도를 막을 파격적인 칼질과 범죄를 뿌리 뽑을 강력한 쇠주먹의 손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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