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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문화·예술

[중남미 영화관] 3편: 격동의 멕시코, 삶을 품어낸 대지의 시선, 영화 《로마》

by 푸엔떼 2026. 6. 9.

 

 

네루다의 격동적인 여정에 이어, 이번에는 멕시코의 현대사 속 가장 낮고 소외된 곳을 비추는 거장의 마스터피스로 향해봅니다.

[중남미 영화관] 제3편은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을 휩쓸며 전 세계를 경탄하게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18년작 영화 《로마(ROMA)》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로마'는 이탈리아의 도시가 아니라, 1970년대 멕시코시티 내의 중산층 주거 지역인 '콜로니아 로마(Colonia Roma)'를 뜻합니다. 감독 자신의 자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격동의 역사 속에서 묵묵히 삶을 지탱해 낸 여성들의 연대를 흑백의 경이로운 영상미로 담아낸 수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혼자야."

— 영화 《로마》 중 소피아의 대사



<img src="roma-movie-poster-fixed.jpg" 
 alt="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 비평을 위한 블로그 전용 포스터 이미지. 1970년대 격동기 멕시코시티의 시대적 배경을 담은 고풍스럽고 깊이 있는 흑백 미장센을 기조로 하며 영화 속 클래식한 분위기와 가슴 먹먹한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시각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고품격 영화 평론 썸네일." 
 title="중남미 영화관 - 로마(ROMA) 평론 포스터" />




 

영화 《로마》는 화려한 할리우드식 서사나 극적인 반전 대신, 1970년대 초반 멕시코의 평범한 한 가정과 그곳에서 입주 가정부로 일하는 인디언(믹스텍족) 출신 여성 '클레오'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갑니다.

컬러가 대세인 현대 영화판에서 감독은 과감하게 전편을 압도적인 깊이의 65mm 흑백 화면으로 연출했습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인물들을 섣불리 동정하거나 다가가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빗자루로 마당을 쓸어내리는 물소리, 비행기가 지나가는 하늘, 그리고 한 여성이 겪어내야 했던 삶의 비극과 숭고함을 거대한 대지처럼 묵묵히 관조합니다.

 


 

1. 가구의 먼지를 털고, 아이들을 깨우는 일상의 숭고함

 

주인공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의사 남편과 네 명의 아이를 둔 멕시코 중산층 가정의 가정부입니다. 그녀의 하루는 이른 아침 저택의 바닥을 물청소하고,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는 고단한 노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클레오는 이 집의 단순한 피고용인이 아닙니다. 남편의 외도로 슬픔에 잠긴 안주인 '소피아'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며, 부모의 불화를 눈치채고 불안해하는 네 아이들에게는 친엄마보다 더 따뜻하게 품을 내어주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자 수호자입니다.

영화는 전반부 동안 멕시코 원주민 계급인 클레오의 시선을 통해, 계급과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일상적인 사랑과 돌봄이 어떻게 한 가정을 지탱하는지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2. 개인의 비극과 1971년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의 소용돌이

 

중반부에 접어들며 클레오 개인의 삶과 멕시코의 잔인한 현대사가 잔인하게 교차합니다. 클레오는 남자친구인 '페르민'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무술에 빠져있던 무책임한 페르민은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극장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쳐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상심한 클레오를 위해 안주인 소피아는 함께 아기 침대를 고르러 가자며 가구점으로 그녀를 데려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가구점 창밖으로 멕시코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일명 엘 할코나소 사건)'이 발발합니다. 정권이 고용한 우익 준군사조직 '할코네스'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대학생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입니다.

혼비백산이 된 가구점 안으로 총을 든 청년들이 들이닥치는데, 놀랍게도 그중 한 명이 클레오를 버리고 떠난 아이 아빠 '페르민'이었습니다. 자신과 아이를 버린 남자가 민중을 학살하는 폭력의 선봉에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 클레오는 극심한 충격으로 양수가 터지게 됩니다. 아수라장이 된 도로를 뚫고 병원에 도착하지만, 삼엄한 군대의 통제와 혼란 속에서 결국 클레오는 사산(死産)이라는 가슴 찢어지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3. 파도 속에서 피어난 여성들의 위대한 연대

 

아이를 잃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클레오를 위해 소피아는 가족 여행을 제안합니다. 남편과의 이혼을 아이들에게 고백하기 위한 여행이자, 슬픔에 잠긴 클레오에게 환기를 시켜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행지인 투스판 바닷가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눈물겨운 명장면이 탄생합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클레오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갑니다. 소피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먼바다까지 휩쓸려가 익사할 위기에 처한 두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센 파도와 사투를 벌인 끝에 아이들을 해변으로 끌어내 온 클레오. 소피아와 네 명의 아이들은 해변에 주저앉아 클레오를 나비처럼 감싸 안으며 통곡합니다. 이때 클레오는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전율 돋는 고백을 토해냅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요. 죽기를 바랐단 말이에요." 죄책감에 울부짖는 클레오를 향해 가족들은 "우린 널 너무 사랑해"라며 그녀를 단단하게 보듬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백인 안주인 소피아와,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이까지 잃은 원주민 하녀 클레오. 두 여성은 가부장제의 폭력과 계급의 벽을 넘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거대하고 위대한 '어머니 대지'의 연대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 [스페인어 한 마디] 영화 속 대사로 배우기

 

남자들의 무책임한 도피 속에서 상처받은 두 여성이 서로를 위로하며 나누는,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입니다.

 

"No importa lo que te digan, siempre estamos solas."
(노 임포르타 로 케 테 디간, 시엠프레 에스탄모스 솔라스)

"그들이 너에게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어, 우리(여성들)는 언제나 혼자야."


 

📌 블로그 독자를 위한 관람 팁

 

영화 《로마》는 극적인 사건 중심이 아니라 잔잔한 일상의 공기감을 느끼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사운드'가 예술인데, 개들의 짖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마칭밴드 소리 등이 입체적으로 화면을 채웁니다. 잔잔한 영화인 만큼 화면이 큰 TV나 조용한 환경에서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기 때문에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단독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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